About The Search in Posts

“ 알렝 플라네스, 1836년 플라이엘 피아노 ”



이 음반은 쇼팽이 살았던 동시대의 피아노로 당시 쇼팽이 연주했던 연주회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와 연주한 음반이다. 무엇보다 쇼팽이 아끼고 사랑했다는 플라이엘 피아노가 어떤 음색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모던 피아노가 같고 있는 장대한 음색과 기능성과는 별개로 플라이엘 피아노는 빈식 피아노의 전통이 잘 살아있는 피아노다. 맑은 음색과 가벼운 터치, 그로인해 기민하게 반응하는 피아노. 쇼팽이 선호했다는 피아노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이 플라이엘 피아노의 소리. 

알랭 플라네스의 연주 또한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그가 꾸준히 발표한 음반에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 음반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을 정도다.

이 음반을 듣고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시대를 초월해 쇼팽의 음악은 아름답다는 것과, 쇼팽의 음악과 피아노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고, 그 중심에 플라이엘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호화로움의 극치, 나이브 비발디 오페라 박스 Vol.1 ”






































이것들보다 더 큰 사진은 여기에 -> http://kojiwon.tistory.com/20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코른골드, 죽음의 도시 중에서 ”



코른골드 오페라 '죽음의 도시'는 주인공 테너와 소프라노에게 엄청난 기량을 요구하는 곡이라 만만한 곡이 아니다. 발췌한 테너 독창중에 합창이 나온다. 낙소스는 다른 음반과 달리 이 음반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사용하는데, 이 곡의 환상적인 성격을 극대화한 가장 효과적인 부분이다. 사진은 아마도 2004년 빈필 공연 실황 같다. (대머리 여자를 보니 ㅎㅎ). 테너의 독창 막바지에 나오는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어린이 합창단의 소리를 들어보시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2009년 12월 5일, Frankfurt 오페라 극장 공연 "Die Tote Stadt" ”


2009년 12월 5일, Frankfurt 오페라 극장 공연 "Die Tote Stadt"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공연 실황을 볼 수 있는 유럽이 아주 아주 부럽다.
한국 오페라 공연을 잘 안보려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동양인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서양인 흉내 분장때문이다.
좀 오페라를 창의적으로 해석할 수 없나...
미국이야 같은 코쟁이니까 고전적인 무대를 올린다지만 우린 코쟁이가 아니잖아.

어떤 형은 미국은 수준이 낮아저 유럽의 아방가르드한 무대를 올리면 파리를 날린다고 한다. 
뭐 그 말이 100%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유명한 오페라 같은 경우는 우리도 현대적인 무대 해석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많이 봐온 오페라인데, 매번 똑같은 무대 보면 지겹잖아. 

그리고 이 공연은 사진으로 봐도 멋진 무대다.
이 정도 창의적인 무대라면 원작의 무대가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다.
공연평에 '환성적'이라는 평을 보았는데,
그 환상을 눈으로 보여준 기가막힌 무대처럼 느껴졌다.
영상물로 출시되면 꽤나 좋을 것 같은데,
사진으로 대충 훑어보는 느낌이 아쉽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백건우 ”










라이센스 음반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기피증세가 있지만,
이번에 어렵게 구입한 백건우 베토벤 소나타 전집은 만든 모양새 자체는 훌룡하다.
재질도 고급스럽고, 특히 내지에 엄청난 신경을 썼음을 잘 알 수 있다.
다만 시디를 고정하는 아크릴 고정대가 빈약한 접착제로 인하여 쉽게 떨어진다.
이미 2개가 떨어졌고, 떨어질 기세가 보이는 고정대도 여러개다.
라이센스라고 해도 음질이 떨어진다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음질에 대한 불신은 없다.
다만 만듬새에 대한 불만이 늘 컸는데,
이번 백건우 전집은 이런 불만을 크게 잠식할 듯 하다.
라이센스 음반은 특히 음반 내지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이번 백건우 베토벤 전집이 마음에 들었던 까닭은, 심혈을 기울인 내지가 가장 큰 요인이다.
물론 만듬새 자체도 훌룡하지만.
라이센스 음반을 분발을 기대해본다.

다만 이번에 발매된 정경화 박스 음반은 아무리 봐도 허접해 보여서 구매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다.
실물을 한 번 보면 좋을텐데 쉽지 않을 듯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바흐 칸타타, 칼 리히터 ”





바흐 칸타타를 듣는데 있어,
칼 리히터는 아직도 피해갈 수 없는 거대한 봉우리와 같다.
낡았지만 아직도 고색창연한 기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몬테베르디 ”


즈그비뉴 형이 추천해줘서 산 음반인데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고, 할 수도 업는 요즘.
이 음악을 들어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폴리니, 치콜리니 신보 소식 ”



이번 폴리니의 신보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오직 '찬사'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평균율 역사를 다시 쓸 역작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평론가들의 찬사가 없어도 폴리니의 음반이 나오면 의례 영입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이 이 바닥 정서이다. 문제는 1권을 사고 2권이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느냐, 아니면 1,2권이 묶여져서 나오는 것을 기다리느냐 이다. 합리적인 선택은 1,2권이 묶여 염가로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지만, 과연 그때까지 기다리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최후의 승자는 기다리는자. 그러나 우리의 인내심은 짧다.



EMI 에서 그동안 치콜리니가 녹음한 모든 음원을 56장을 박스로 정리해서 내놓았다. 치프라 박스, 리히터 박스에 이른 종합선물 세트. 치프라 박스는 필수 구매 목록이라 그동안 구입했던 수십장의 낱장을 정리하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직도 영입을 못하고 있다. 리히터 박스는 구매하기에는 겹치는 것이 꽤나 많고 낱장으로 사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고민중이다. 치콜리니는 리히터나 치프라같은 거인들과 비하며 이름값이 좀 떨어지는 느낌은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장이고, 근래에 발표한 쇼팽, 슈만 음반은 기적이라 일컬을 정도로 대단한 완성도를 지녔다. 사실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치콜리니를 나름 좋아해서 꾸준히 그의 음반을 모아왔다. 치콜리니의 명성을 드높인 2번의 사티 피아노 전곡 녹음과, 생상 피아노 협주곡 전집은 많은 애호하가들이 갖고 있고 또 좋아하는 음반이다. 사고 싶은데 겹치는 음반이 많고 가격도 꽤나 높고, 수록곡이 좀 애매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폴리니 치콜리니 다 이탈리아 피아니스트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미켈란젤리도 이탈리아 피아니스트고. 부조니로 시작한  근대 이탈리아 피아노 계보도 한번즈음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러시아 악파가 워낙에 강세여서 밀리는 감이 좀 있지만, 이쪽 피아니스트 일면이 워낙에 대단하니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관심 음반 ”

낙소스에서 발매되는 일련의 스페인 음악 시리즈는 모두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부조니가 피아노 역사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장난이 아닌데 이상하게 음반이 없다. 기껏해야 바흐 편곡집 뿐이었는데, 낙소스가 아니면 이제 이런 신보는 만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낙소스에게는 언제나 박수 뿐이다.

몬테베르디 거기에 크리스티의 조합, 이보다 더 좋은 구매 유발 요인은 없다.
다만 이 조잡한 음반 자켓과 디지팩은 최대 저해 요인.

캉프라 칸타타에 대한 호기심이 크리스티로 급 상승중.

3장을 한장 가격으로 묶어서 발매한다면 구입할만 하다. 난 그렇게 생각.
요즘 제일 잘나가는 미스터 빈 아저씨잖아.

어려서부터 북유럽 신화에 매료된 나는 북구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 동경심이 음악에도 이어져 북구의 쇼팽 그리그로 시작,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신딩도 좋아하는 작곡가. 다만 낙소스 가격은 되야 구매할 수 있음.

이 두 음반은 5장을 한장 가격으로 묶어서 발매한다 해서 관심.
둘 다 무척 유명한 연주자이기는 한데, 난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다만 얼마전 이웃인 코스마님이 추천한 슈멜처는 예외. ^^

이 시리즈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내지가 궁금함.

블루레이로 가면 한글 자막이 없고, DVD로가면 한글 자막이 있음.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유.
영어를 우리말처럼 잘하는 사람은 블루레이
우리말이 편한 사람은 DVD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은 중간, 그래서 구매 못함.
망설이기만 함.

바이에서 발매되는 일련의 길레스 실황은 다 구매가치가 있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비용.
예전에 알라딘에서 3천원에 길레스 실화을 구입했는데 지금은 3만원도 넘는다.
3천원의 향수때문에 지금도 못사고 있는 DVD.

이 음반이 드디어 낱장으로 발매되었다. 절판된 카라얀 박스에 포함되어 이 한장때문에 박스를 사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였는데, 드디어 낱장으로 발매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박스 이 한 장만 관심있었다. 안 사기를 천만다행.

20만원 가까이 했던 쇼팽 전집이 드디어 염가로 풀렸음.
염가라도 가격이 상당할 것 같은데... 20장 내외로 알고 있는데
5만원 이내로 풀리면 살만하다고 봄.
그 이상은 무리.

염가의 홍수 시대라 이렇게 별의 별 주제로 묶여서 박스가 나온다.
연주자나 작곡가를 중심으로 묶인 박스는 그래도 양반.

둘 다 워낙에 유명한 연주라 말은 필요 없다.
쉬프 바흐 박스는 거의  필수 아이템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좋은 것은 사실.
그런데 모차르트 후기 피아노 협주곡 말고 초.중기를 듣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
난 지겨워서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몬테베르디 + 크리스티 = 사야 됨 ㅡ.ㅡ

투레바도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필수 아이템
이 시리즈로 나오면서 가격은 미드로 내렸음.

이 박스의 구성이 어떻게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
구성만 전곡으로 이루어진다면 Must Have ~

EMI 보다 낙소스의 복각이 더 낫다고 하니...
게다가 가격도 싸니까.
예전에 5천원일 때가 좋았는데 지금은 7천원 함.

낙소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
마르티누 피아노 전곡 녹음을 향한 질주가 계속 됨.

역시 이름이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사랑했으나 사랑받지 못했네 ”


Onques n'amai tant que jou fui amee
Troubadours:  vers 1250

Ensemble Perceval
Katia Care , chant
Jean-Pierre Dubuquoy , viele
Guy Robert , harpe

요즘 머리속에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
봄은 다가오는데, 마음속은 아직도 북풍이 매몰찬 한 겨울.

zbigniew 형 블로그에서 들은 이 노래가 마음속에 유난히 오래 남았다.
중세 음유시인의 노래라는데, 왜 이렇게 내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사랑했으나 사랑받지는 못했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About this entry


“ 글렌 굴드 ”




이 동영상을 보면서 참 굴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해괴망측한 자세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건반의 파괴자 리스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귀족의 살롱에서 연주되던 곱상한 모습의 피아노 풍경이라면 모를까. 저 모습을 볼 때면 굴드의 손가락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탄하게 되고, 어려서부터 얼마나 치열한 연습속에서 살았는지 짐작하게 된다. 또한 저런 열악한 자세로 인한 병마까지도.

굴드를 보면 천재성이라는 것은 어떤 악조건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것 같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저 자세에서 품어나오는 아우라와 개성은 음악의 호불호를 떠나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켈란젤리를 좋아하고 추종하는 내가 그와는 정 반대에 서 있는 굴드를 좋아하는 것도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 자체가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을 의미한다. 굴드의 연주는 결코 해괴하거나 개성으로만 똘똘 뭉친 음악이 아니다. 굴드의 음악은 그가 고민하고 연습했던 수많은 노력의 산물이며, 다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길을 걸어간 선구자와 같다.

오늘 날까지도 굴드와 같은 음악가가 다시 나오지 못하는 것도 굴드라는 이 천재가 미켈란젤리와 같은 천재로 부르기에는 그 재능이 찬란한 음악가임을 증명한다. 천재는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별처럼 오랜세월 빛나는 천재는 드물다. 천재도 드물지만 그 천재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더욱 힘들다.

굴드가 남긴 브람스 간주곡집을 들어봐야겠다. 굴드의 브람스 간주곡집은 굴드의 내향적 진심이 묻어난 수작이라 부르고 싶다. 그 누구도 굴드처럼 브람스의 말년을 연주하지 못했다. 골드베르그 연주곡으로 각인된 굴드의 개성은 잊어도 좋다. 브람스 간주곡집을 듣는다며 음악가 굴드의 내밀한 속내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About this entry


“ 정격 연주, 원전 연주, 역사주의 연주, 시대 연주 ”


오늘날 옛 음악을 연주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작곡가가 곡을 쓸 때 마음 속에 염두에 두고 있었거나, 적어도 친숙하게 알고 있었거나, 또는 동시대 음악가들이 잘 알고 있었던 옛 악기나 그것을 복제한 악기를 그 당시의 방식으로 조율하여 그 당시의 일반적인 연주 관습에 따라 연주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여럿 있다. 오래 전에는 사람들이 이런 연주를 가리켜 '정격 연주(authentic performance)'라 했다. 이때 '정격성(authenticity)'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올바르고(right) 진실성이 있으며(true) 본래의 것 ― 즉, '오리지널(orgianal)' 임을 의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오랜 시간 동안에 아주 굳건한 전통으로 자리 잡은 일반적인 연주 방식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작곡가의 의도와는 달리 왜곡된 결과이고, 따라서 정당하지 못 한 '거짓된 것'이라는 점을 은연 중에 말하고 있는 용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전통적인 연주 방식이 정말로 정당하지 못한 것인지 따지는 것은 잠시 제쳐 두더라도,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게 '정격'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도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개념은 사실 엄밀하게 정의하기도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격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역사적 증거들도 결코 많지 않아서 그것으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얻기에는 너무나도 불충분하고, 그나마 전해지고 있는 문헌이나 그 밖의 여러 증거들도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연주자의 직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옛 청중은 현대인과 다를 수 밖에 없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에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연주한다 해서 그 의미가 오늘날의 청중에게 똑같이 전달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런 이유로 정격성이라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거나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허상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격 연주'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독선적이고 교조주의적인 뉘앙스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꼈고 이에 반발했다. 물론 고음악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시간에 흐름에 따라 음악학자들과 고음악 연주자들은 차츰 '정격 연주'라는 용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옛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여 모두 정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옛 음악 연주를 가리켜 무조건적으로 '정격 연주'라 하는 것은 사실 정확한 설명도 되지 못 한다는 점이다. 1970년대 연주에 대하여 그렇게 말한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의 고음악 연주에 대해서는 '정격 연주'라는 용어가 항상 적절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요즘에는 가장 비타협적이고 순수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고음악 연주자들도 정격성 그 자체에 집착하지는 않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정격성을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우리 시대의 철학을 반영하여 '재창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제는 한국에서도 고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런 생각이 조금씩 퍼지고 있어서 '정격 연주'라는 낡은 용어보다는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정격 연주'라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러나 10년 전쯤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사람들이 '정격 연주'라는 말을 피해 새롭게 쓰고 있다는 표현이 왜 하필이면 '원전 연주', '원전 음악', '원전 악기'와 같은 용어란 말인가? 이는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쓰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 표현들도 역시 적절하지 못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국내에서 열렸던 일련의 국제 바흐 페스티벌의 총 책임자였던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강해근 교수도 역시 비슷한 생각을 주장하고 있다. 강 교수는 '원전'이라는 말이 아마도 '원전판(Urtext edition)' 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을 거라면서 '원전 연주'라는 말에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외국어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강 교수가 제안한 용어는 '당대 연주'였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 용어도 곧잘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월간 객석>에서 '정격 연주'라는 낡은 용어를 몰아낸 건 전적으로 강 교수 덕택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을 배척하고 새로운 용어를 쓰기 위해서는 좀 더 설득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원전 연주'라는 말은 왜 부적절한가? 내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사실 이 말이 '정격 연주'라는 용어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도 역시 '오리지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 이외의 것은 왜곡된 연주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격 연주'라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뉘앙스나 '원전 연주'라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나 사실은 그게 그거인 셈이다. 원전이라고? 대체 무엇이 원전이고 무엇이 오리지널이란 말인가? 많은 옛 악기 연주자들은 사실 오리지널 악기보다는 그것을 복제한 악기를 연주한다. 따라서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는 엄밀히 말하면 원전 악기인 것도 아니다. 대개의 경우엔 그저 '카피'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원전 연주'니 '원전 악기'니 하는 표현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 꽤 한참 전부터 '정격 연주'라는 말 대신에 자주 쓰는 표현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또는 좀 더 간단히 줄여서 HIP
역사주의 연주 또는 역사에 바탕을 둔 연주(historical performance)
시대 연주(period performance)
 
마찬가지로 악기를 가리킬 때에도 다음 중 하나를 골라서 쓸 수 있을 것이다.
 
시대 악기(period instruments)
역사적 악기(historical instruments)
옛 악기 또는 고악기(early instruments)
 
이 용어들은 모두 고음악 연주의 핵심이 바로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중에서 '시대 연주' 또는 '시대 악기'라는 말은 내가 즐겨 쓰고 있는 표현인데, 연극에서도 배우들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옷을 입고 나와서 그 시대의 도구들을 쓰는 등, 그 시대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는 경우에 '시대극'이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예술 작품을 '시대물'이라고 일컫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시대 연주'라는 용어는 역사주의 연주를 가리키는 또 다른 말로서 아주 적확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때때로 '시대'라는 말 대신에 '당대'라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라는 말은 문제의 중심에 있는 '바로 그 시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의미할 때도 있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소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당대 연주'보다는 '시대 연주'라는 말이 좀 더 나은 것 같아 보인다.
 
한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 또는 '역사주의 연주'라는 용어는 보다 포괄적인 용어로서 절충주의 연주처럼 반드시 시대 악기를 쓰지 않는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용어도 '시대 연주'라는 표현과 함께 즐겨 쓰고 있다. 아울러 '정격연주'나 '원전연주'라는 말보다는 '역사주의 연주' 또는 '시대 연주'라는 표현이 더 널리 쓰이기를 희망한다.
   

-尙憲-

     
    
(c) http://period-piano.net/





About this entry


“ 이반 모라베츠-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럽지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피아노 ”

이반 모라베츠(Ivan Moravec). 체코를 대표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그는 피아노로 느낄 수 있는 가장 감미로운 연주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약기운과도 같은 피아노 연주


피아노는 악기의 특성상 큰 손과 길다란 손가락, 그리고 팔뚝의 강한 근육으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타건이 있어야 제 맛인 악기이다. 그리고 이처럼 강철타건의 현란한 기교를 뽐내는 피아니스트는 예외 없이 전설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다. 빌헬름 박하우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에밀 길렐스, 라자르 베르만 등등. 하지만 유능제강이라고 했던가? 때론 부드럽게만 흐르는 물이 거대한 바위도 뚫듯이 부드럽게만 들리는 피아노 연주가 무한대의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 부드러운 피아니스트의 1순위로 꼽힐 수 있는 명인이 바로 이반 모라베츠라고 함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라베츠는 1930년 체코의 프라하 출생이다. 그리고 태어난 프라하에서 주로 활동하였고 음악 인생의 대부분을 프라하를 중심으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정열이 많았던 아마추어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였는데 모라베츠는 아버지와 함께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렇게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된 것은 상당히 늦은 나이에서부터였다. 스무 살 때 프라하 음악원에 입학하여 일로나 스테파노바 쿠르조바(Ilona Štěpánová-Kurzová)를 사사하고 뛰어난 재능을 선보이는가 싶었지만 5년 동안이나 연주를 쉬게 되었다. 그 후 1957년에 그 이름도 유명한 만능 멀티 플레이어 아르투르 베네뎃티 미켈란젤리의 눈에 띄어 발탁된다. 프라하에서 열린 그의 연주회를 베네디티 미켈란젤리가 직접 보고 그를 제자로 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레쪼에서 열린 여름 마스터 클래스에 모라베츠를 초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장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후부터 모라베츠의 성공시대는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아르투로 베네디티 미켈란젤리(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능력의 끝을 알 수 없었던 진정한 천재. 피아니스트, 의사, 카레이서, 공군조종사가 모두 그의 이력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스승이기도 하다.


늦게 피아노를 배웠고 게다가 한창 뻗어나가야 할 나이에 5년이나 연주를 쉬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뛰어난 재능마저 없어질 순 없었다. 낭중지추. 뭘 해도 뛰어난 사람은 두드러지지 마련. 1958년에 열린 프라하 연주회의 실황 테잎이 서방세계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모라베츠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본격적인 연주여행을 하면서 그의 명성은 미국에까지 알려졌고 드디어 1962년엔 뉴욕에서 데뷔, 첫 레코딩을 하였다. 그리고 1964년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전설적인 지휘자 조지 셀을 만나면서 미국에서 첫 데뷔무대를 갖게 된다.
그 후 모라베츠는 서방세계로 망명하지 않고 그의 조국인 체코에서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음반녹음과 연주회, 후학양성 등의 활동 하면서 지금까지도 생존해 있다.

모라베츠의 음악


모라베츠가 연주하는 쇼팽, 그리고 그의 인터뷰. 모라베츠는 피아노의 메커니즘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연주자이다. 그의 스승 베네디트 미켈란젤리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 베네디트 미켈란젤리는 한 대의 피아노를 완벽하게 분해한 후 다시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모라베츠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 음반에 대한 평 중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피아노는 해머 대신 솜털이 달려 있을 것이라고. 그의 녹턴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그의 연주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스크림과도 같다.


이런 표현은 어떨까? 약기운이 필요할 때 들으면 딱 좋은 연주. 어쩌면, 어쩌면 그토록 한 대의 피아노를 가지고 그처럼 몽롱하면서도 감미롭게 연주할 수 있는지. 그저 감탄 밖엔 나오지 않는다. 그 감탄은 정신없는 속사포 같은 속주와 강철타건으로 점철된 압도적인 힘의 연주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제르킨이나 폴리니처럼 자로 잰 듯한 명쾌한 연주와도 다른 느낌이다. 모라베츠의 연주는 그만큼 투명하면서도 영롱하고 부드러우면서 달콤하다. 이는 그의 스승인 베네디트 미켈란젤리와도 또 다르다. 베네디트 미켈란젤리는 대단히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연주를 잘 구사했지만(그런 이유로 그의 레퍼토리 중 라벨, 드뷔시는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 모라베츠는 그의 스승과는 또 다른 투명함과 상쾌함이 함께 하고 있다. 

다루는 레퍼토리도 다양한 편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슈만부터 프랑크, 브람스, 드뷔시, 라벨, 그리고 프로코피예프 등 고전부터 현대음악가까지 매우 다양한 레퍼토리를 다룬다. 그 중에서도 쇼팽의 연주에 가장 많이 집중이 되어 있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메타나, 드보르작, 수크 등 많지 않은 체코 작곡가의 곡에 애착을 갖고 연주하였다는 것이다.

괴팍스럽기로 짝이 없었던 그의 스승과 성격도 꽤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 연주회 당일의 컨디션을 무척이나 중시하여 대단히 까다롭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염가로 구입할 수 있는 4CD 박스 세트.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드뷔시, 라벨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글쓴이 :  sniper




About this entry


“ 힐러리 한,Hilary Hahn ”


앞으로 연주자들 사진을 꾸준히 올려 볼 생각이다.

힐러리 한은 그렇게 좋아하는 연주자가 아니라, 음반도 한장인가 밖에 없는데 또래중에서 실력은 가장 출중한 것 같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면 발표하는 음반마다 수록곡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




About this entry


“ 관심가는 신보 ”


하이든 사후 200주년 기념 시리즈중 하나, 하이든의 칸타타라고 하니 매우 궁금

각  파트에 악기 하나만 배정했다고 한다. 기악의 리프킨 가설이가 하하. 아무튼 좀 더 빠르고 성부간의 구분의 명확한 연주일 것 같다. SACD면 가격이 더 비쌀텐데 마이너스 요소임.

헤레베헤의 바흐 칸타타 신보, 이번에도 예외없이 구입해야 할 것 같음

전에 소개했던 핑크 여사의 바흐 알토 칸타타 음반. 예전 글은 이곳에서

고음악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카발리의 신보. 카발리의 라 칼리스토라는 오페라 음악으로 고음악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카발리에 대한 편애가 좀 있음





About this entry


“ 바흐 알토 칸타타, 베르나르다 핑크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알토 칸타타 (35, 169, 170번)
베르나르다 핑크, 메조소프라노
페트라 뮐레얀스, 지휘 /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Harmonia Mundi France HMC 902016


카운터 테너들이 장악하고 있던 바흐 알토 칸타타 음반들 사이에 드디어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는 음반이 등장하였다. 그것도 베르나르다 핑크 여사라는 이름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강력한 음반의 등장이다. 준형이형의 평을 읽어보니 지금까지 발매된 그 어떤 수연과도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지녔다고 한다. 그동안 바흐 알토 칸타타 음반이 죄다 카운터 테너 일색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모르겠다.

카운터 테너들의 목소리는 처음들을 때는 굉장한 흡입력을 갖고 있는데, 조미료와 같아서 들으면 들을수록 가창의 단조로움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여성과 달리 남자로 여성의 음역을 담당하는 카운터 테너는 과거 카스트라토와 달리 흉성이 아닌 두성으로만 발성을 한다. 카스트라토는 거세남이었기 때문에 흉성 두성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가창이 가능했지만 카운터 테너는 거세남이 아니다. 때문에 기술적인 발성과 노력으로 두성을 발달시켜 여성의 음역을 담당하기 때문에 발성의 한계라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요즘도 거세남은 아니지만, 병으로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카스트라토라고 볼 수 있는 남자 성악가가 있기는 하다.

이런 여러가지 면을 고려해보면 안드레아 솔처럼 곱디 고운 미성일지라도 아무래도 여성 성악가의 가슴 깊이 울려나오는 그 발성을 따라올 수 없다. 성량도 풍부하고 자연스럽고 깊은 울림을 지닌 여성 알토의 음색은 기술적인 발전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남녀간의 역할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유명한 바흐 알토 칸타타에 여성 알토의 음반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의문으로 남을만 하다. 그간 자넷 베이커의 음반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식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자넷 베이커의 음반은 명성만 들었지 실제 들어본 적도 없다.

이런 그간의 사정을 만회라도 하듯 베르나르다 핑크라는 걸출한 알토가 바흐의 이 유명한 칸타타를 녹음한 신보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잡지 실린 평은 극찬에 가깝다. 아귀가 딱딱 맞아가는 모양새니 이 정도되면 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조만간 모든 음반판매점에서 구입가능한기때문에 구매의 용이성 또한 뛰어나다. 이 주목할만한 신보를 듣고 기회가 된다면 감상평을 올려보도록 하겠다.





About this entry


“ 마우리츠 라벨 ”


요즘 음악을 거의 안듣기는 하지만, 가끔 듣는 유일한 음악이 라벨의 관현악 작품들이다. 아바도 & 런던 심포니 연주의 트리오 시리즈를 듣는다. 가격도 저렴하고 아바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찾기 쉽기 때문에 부담없이 손이 가는 것 같다.

라 벨은 불행이나 슬픔 절망과는 거리가 먼 작곡가이다. 삶 자체도 평탄했고, 어려서부터 크게 천재로 각광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 실력있는 학생으로 작곡가로 꾸준히 성장하여 후일 대성하였다. 교통사고만 아니였어도 만년까지 유쾌한 삶을 지속하였을텐데, 만년의 교통사고는 작곡가의 팔,다리를 잘라놓은 셈이다.

라벨의 전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라벨은 독신이지만 어린이를 사랑하고 그 삶까지 참 유쾌한 사람이다. 오죽하면 스스로가 슬픔과 절망은 작곡의 적이라고까지 말했으니까? 고난속에서 만개한 베토벤과 슈베르트같은 독일 정신에 입각한 작곡가들과는 궤가 많이 다르다. 그리고 라벨의 음악은 그가 좋아한 시계처럼 조밀조밀하고 꽉꽉 짜여진 음악이다. 라벨이 다작을 하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그의 완벽주의적 기질, 시계를 좋아한 그의 성격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라벨의 사진을 보면 멋쟁이 옷차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그의 회중시계이다.

독신이지만 깔끔했고, 독신이라고 다 동성애자는 아닌 법, 어린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어린이를 위한 음악도 꽤나 많들어 내놓았다. 게으른 작곡가 라벨이 얼마나 아이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면모이다.

동 시대 최고의 작곡가로 추앙받는 드뷔시에게 은근한 질투심도 갖고 있었지만, 라벨은 리히테르가 좋아할만한 성격이 소유자같다. 유쾌하고 따뜻하고 물론 까다로움은 모든 작곡가들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으니 빼고, 키는 작지만 잘 차려입은 멋쟁이에 홀딱 뒤로 넘긴 머리는 조금은 근사하기까지 하다.

라벨은 작곡도 별로 안했다. 그나마 편곡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라벨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오늘 날에도 즐겨 연주된다. 편곡작품까지도 인기는 상종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도 라벨 편곡반이 가장 인기있으니까...

라벨은 음악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재미있고 유쾌한 작곡가이다. 말러에서 느껴지는 비극으로 치닿는 비애감같은 것은 그의 음악에서 찾을 수 없다. 비극이 수많은 영감의 원천으로 등장할 때 라벨은 단호하게 희극을 꺼내들었다.

라벨의 음악은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시계속 톱니바뀌처럼 째깍째깍 이를 맞물리며 돌아간다. 그의 음악은 빈틈이 없다. 이것이 라벨의 음악성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시계하면 라벨이 생각난다.





About this entry


“ Emil Von Sauer ”


입이 10개라도 칭송이 부족한 발터 기제킹의 젊은 모습, 가운데 늙은 신사가 자우어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전통을 보여주는 사진이 아닌가 싶다. 천하의 기제킹도 자우어 앞에서는 애숭이처럼 보이는 유쾌한 사진. 젊은 날의 기제킹의 모습도 유쾌하고.


에밀 폰 자우어,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리스트의 마지막 직계 제자이다. 초기 레코딩 시대까지 살아남아 그의 피아노 말년 피아노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음질은 조악하지만 세월을 뛰어넘는 위대한 연주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베토벤의 키스를 받은 리스트, 리스트의 키스를 받은 자우어 이 위대한 전통이 지금은 누구에게 이어지고 있을까?

자우어는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스승의 전통을 물려받아, 꽤 많은 분량의 곡을 남겼다. 피아노 독주 음반도 꽤 있는데 불행하게도 국내에서는 구입 불가. 유일하게 구입가능한 그의 음반은 스테판 허프가 연주한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연주고 좋고 상까지 받은 음반이라 보이면 무조건 구입해도 무방하다.

이 곡을 들어보면 그가 받은 비르투오조(Virtuoso), 낭만주의 전통이 얼마나 잘 곡에 스며들었는지 알 수 있다. 화려한 1악장을 필두로 아름다운 느린 악장이 이어진다.

그는 리스트의 전통을 현대에 이어준 유일한 교두보이자, 간접적으로 리스트의 피아니즘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살아있는 기록이다. 그가 남긴 녹음과 곡 모두 소중한 기록인데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의 독주곡 음반을 올려봐야지.



피아노 협주곡 1번중 3악장 카바티나 악장

Stephen Hough, Piano
Lawrence Foster, Conductor
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이 사진이 이 위대한 비르투오조의 사진이다. 좀 더 기회가 된다면 그의 음악과 삶에 대해서 연구해 보고 싶다.




About this entry


“ [번역] 지평이 열릴 때 ”


[번역] 지평이 열릴 때 :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에 관하여 (by 언드라시 시프)


(c) Kevin Scanlon for The New York Times
    
   
지평이 열릴 때
 
글 : 언드라시 시프 / 2008년 6월
   
나 는 지금까지 언제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히말라야와 같은 거대한 산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많은 산봉우리들은 — 어떤 것들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다른 것들은 그보다는 낮지만 — 자연스럽게 하나의 통합체를 이루어 하나라도 떨어지면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고려 사항들도 중요하고 순전히 체력만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것들은 연주자의 감성과 지성, 정신적인 힘에 도전하는 것에 비한다면 그렇게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지금까지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을 15번이나 완주했으니(그 외에도 거의 전곡에 가까웠던 적도 다섯 번 더 있었다), 이제는 아마도 그 원정을 통해 내가 얻은 경험들을 개괄해도 될 것이다.
  
베토벤의 작곡 양식이 발전해 가는 과정은 두 가지 작품 군에 특별히 명료하게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현악 사중주와 피아노 소나타이다. 이 작품들은 마치 두 개의 튼튼한 동아줄처럼 베토벤의 일생 전체에 걸쳐 이어져 있다. 한편으로는 작품2와 작품111을 비교해 볼 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18에서부터 작품135에 이르는 동안에, 우리는 베토벤의 작곡법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크게 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예술은 항상 변화해 가는 과정 속에 있었다.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와 비교하여 짧지 않았던 그의 일생 동안에, 베토벤은 각각의 새로운 작품으로 신천지를 새롭게 탐험해야 했다. 피아노 소나타 분야에서 우리는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창의에 언제나 놀라움을 느낀다. 모든 소나타는 각각 독자적인 모습을 띠고 있고 다른 것들과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차이점이 훨씬 더 중요하며, 해석자가 해내야 할 진짜 과제는 각각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과 특징을 드러내 보여 주는 일이다.
  
다른 피아니스트들처럼 나도 어렸을 때와 학생 시절에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했다. 물론 그렇게 잘 하지는 못 했다. 나는 <전원> 소나타나 작품109와 같은 몇몇 곡들에 공감했고 이런 곡들에 대해서는 친숙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열정>과 같은 다른 작품들은 너무나도 어렵고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사운드는 매우 복잡하다. 소리의 세기에 관한 문제보다도 내적인 세기와 힘이 더 중요하고 이러한 특질들은 풍부함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베토벤의 ‘piano(여 리게)’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에서보다 더 두텁고 풍부하다. 왜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사장조 피아노 협주곡의 시작 부분을 그토록 어려워 하는가? 확실히 거기에는 보다 단순한 사장조 3화음의 서브텍스트가 있지만, 여기서 8개의 성부는 그 어떤 경우보다도 더 정제된 균형을 필요로 한다. 바로 여기에 예술이 있고, 나는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옷들을 내가 정말로 자라서 내 몸에 맞게 되기 전까지는 입어 보려고 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나는 후기 소나타 작품110과 작품111에 대하여 너무나도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고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은 거의 종교적인 금기에 가까웠다. 나는 “어떻게 나 같은 작은 소년이 그러한 곡들에 손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연주 활동을 하면서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베토벤 주위를 멀리 돌아서 피해 갔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훙가로톤 레이블을 통해 녹음했던 음반은 흥미로운 예외였다. 그때 나는 바가텔과 다른 짧은 소품들을 작곡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었던 1816년 산 브로드우드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여 녹음했는데, 이 악기는 현재 부다페스트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장기에 얻은 어떤 경험들은 나에게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니 피셔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다. 이 경탄할 만한 아티스트는 70대의 나이에 부다페스트에서 32개의 소나타를 연주했고, 나는 꽤 운이 좋게도 그녀의 전곡 연주를 두 번이나 들을 수 있었다. 여러 해 뒤에 나는 그 당시에 내가 베토벤에 대하여 느끼고 있던 어려움을 그녀에게 이야기했는데, 그때 그녀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유감이군요, 그건 천상의 음악이거든요!” 그러다 1978년에는 말보로 페스티벌에서 루돌프 제르킨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배울 수 있었던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음악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텍스트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작곡가의 지시를 가능한 한 자세하게 살펴 보아야 하며 그것을 따라야 한다. 이런 점에 관한 한, 제르킨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원칙을 지니고 있었던 위대한 대가였다. 그리고 좀 더 지나 80년대 초에는 샨도르 베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음악을 만들 때 가장 편안하게 느꼈는데, 그는 절대적인 명인이자 타고난 음악가였으며 위대한 사중주의 리더로서 베토벤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에게서 정신적인 도움을 받아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는 나에게 미래에 대한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때 우리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열 곡 모두를 연주했고 녹음도 했다.
  
1978 년부터 2003년까지 25년 동안에 나는 우선 바흐와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에 집중했는데, 베토벤을 준비하기 위해 좋은 학습이 되었다. 그리고 40세가 되면서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체계적으로 집중하여 탐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들 중 절반은 이미 내 레퍼터리 중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1년에 두 세 곡씩 새로운 작품을 익혀야만 했고, 최종적으로는 <발트슈타인>과 작품110 및 작품111에 도전해야 했다. 10년이 지난 2003년까지 상황은 이러했다. 즉, 나는 모든 소나타를 철저하게 연구했고 연주회 프로그램에 그 곡들을 처음에는 한 번에 하나씩 포함했다. 그러다 전곡을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또 다른 해석이 정말로 필요한가에 대하여 내 자신에게 스스로 되물었던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던 신념은 흔히 자주 인용되는 것처럼 한스 폰 뷜로가 베토벤의 소나타를 가리켜 음악의 “신약성서”라고 일컬었던 정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음악은 매우 위대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계속 공부하고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을 짜는 방식에 관해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각각의 작품들은 그 길이가 천차만별이고, 이 곡들을 8회의 프로그램으로 나누는 것이 좋겠는데, 어떤 순서로 배열해야 할까? 그에 관해서는 피아니스트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연대기적 순서로 배열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배열하면 8회의 프로그램에 꼭 들어맞는다. (초기 작품이긴 하지만 뒤늦게 출판되었던 두 개의 ‘쉬운’ 소나타 작품49의 위치만은 결정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 곡들을 작품 13과 작품 14 사이에 배치하여 세 번째 프로그램의 첫머리에 넣었다.) 작곡가가 하나의 작품 번호로 묶어서 출판했던 곡들(작품2, 10, 14, 27, 31, 49)은 그대로 함께 묶어서 배치했는데, 이런 곡들은 문맥 안에서 비로소 의미 있게 들린다. 그리하여 감상자들은 마치 위대한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이 소나타 전곡 사이클의 ‘큰 줄거리’를 논리적이고 연속적인 방식으로 따라갈 수 있다.
  
이 러한 연대기적 순서를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사실들 중 하나는, 좀 더 덜 알려져 있는 소나타들이 다른 유명한 곡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것은 명백히 매우 부당하다는 점이다. 또한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곡들은 바로 앞뒤에 작곡된 곡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더욱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이처럼 서로 관련이 있는 경험과 긴 여행을 통하여 배워가는 과정에 대하여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청중의 몫이고, 이러한 이유로 이상적인 감상자들 – 우리와 줄곧 함께 할 동반자들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소나타 한 곡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공부하고 분석하고 연습할 수 있지만, 진정한 성숙의 과정은 실제 연주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세부적인 것들로부터 큰 그림이 나온다. 용기와 자신감은 연주를 반복하면서 커져 가며,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자 하는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진부해질까 봐 걱정해야만 할까? 아니다. 이 음악은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위대하며 결코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매일 같이 달라진다.
  
나는 각 프로그램을 몇 차례 연주한 후에 취리히로 가서 그곳에서 연주회를 녹음했다. 톤할레의 큰 콘서트 홀은 훌륭한 레코딩 장소이며, 취리히의 청중은 식견이 높을 뿐만 아니라 매우 잘 훈련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음악회 실연을 녹음하기로 했는데, 베토벤의 음악은 연주되는 그 순간으로부터, 그리고 연주자가 위험을 무릅쓰는 동안에 나오는 아드레날린으로부터 생명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서는 연주하다가 멈출 수도 있고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전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베토벤의 음악을 이처럼 너무나도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도 파편화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그의 음악은 위대한 순간과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찰나를 필요로 하며, 이것은 오직 ‘라이브’ 현장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 우리가 운이 좋다면 그러한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연주회 결과가 좋지 못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 결과물을 음반으로 꼭 내 놓을 필요는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마지막 소나타 세 곡을 취리히에서 공연하고 나서 몇 달 뒤에 노이마르크트의 승마 학교 안에 있는 홀에서 아무도 없는 가운데 다시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그 밖의 다른 소나타들은 취리히에서 낮 시간에 있었던 공연을 녹음한 것이며 리허설 녹음을 이용하여 약간만 고쳤다. 우리가 얻고자 했던 것은 이 작품들에 대한 ‘유효한’ 연주였으므로 연주회를 일부러 박수 없이 진행했다. 녹음할 때에는 박수가 항상 어느 정도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 리고 나는 여러 악기를 사용했다. 두 대의 뵈젠도르퍼 임페리얼과 스타인웨이 한 대였는데, 이 피아노들은 모두 페스카라에 있는 안젤로 파브리니 社가 보유하고 있는 악기였고, 나의 피아노 조율사 로코 치켈라가 주의 깊게 조율해 주었다. 베토벤의 소나타들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피아노로 모두 연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 작품들은 피아노 발전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베토벤은 그 자신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며, 많은 피아노 제작자들이 — 빈에서만 100 명이 넘는 제작자들이 있었다 — 일하는 방식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제작자들 중 몇 명과 친하게 지냈으며 그들의 악기 제작 활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모든 악기들은 각각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고 매우 다양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전혀 달라서 거의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스타인웨이에만 의존하고 있다. 세계화는 패션에 관해서든 요리법에 관해서든 항상 그 대가를 치루기 마련이다. 음악에서는 특별히 더 심각하다. 각각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개별적인 음향 세계를 찾으려고 하는 대신에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타협하고 평준화하고자 한다. 좋은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훌륭한 악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유일하게 적절한 악기일 수는 없다. 과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은 다양한 악기로 연주했다. 슈나벨은 베히슈타인을, 코르토는 플레옐을, 또 다른 이들은 블뤼트너나 이바흐를 연주했다. 빈의 뵈젠도르퍼 社는 보다 더 따뜻하게 노래하는 톤을 지닌 피아노를 생산하고 있으며 빈의 전통을 최고로 가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뵈젠도르퍼로 연주할 때 특별히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베토벤의 소나타들 중 상당 수는 슈베르트를 연상하게 한다. 슈베르트는 모방자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선배였던 거장을 존경했다. 슈베르트에게 베토벤은 도달할 수 없는 모범이었으며 끊임없이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들 중 절반은 뵈젠도르퍼로 연주하고 나머지는 스타인웨이로 연주하기로 했다. 감상자에게는 어느 작품을 어떤 피아노로 연주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내 경험상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인데, 스타인웨이를 좋아하고 뵈젠도르퍼를 싫어하는 편견이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또는 역사적인 악기로 또 다른 버전을 한 번 더 연주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그 모든 광채 속에서 완전한 음향 스펙트럼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수 용하는 쪽에서도 역시 편견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 소나타들을 알고 있다. —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자신의 습관을 버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청취 습관들 중 많은 것들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음악 텍스트 연구에 근거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막연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인 경우에 연주자들은 편견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 <비창> 소나타의 첫 악장에서 반복 지시는 어디에 놓여야 할까?(역주1) 올림다단조 소나타에서 통상적인 것과는 다른 페달 지시를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역주2) 그리고 이 <월광> 소나타의 제목은 베토벤에게서 비롯된 게 전혀 아니며 실제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언제쯤에야 마침내 알게 될 것인가? 우리는 <열정> 소나타의 첫 악장에서 박자와 올바른 리듬을 정말로 잘 알고 있을까?(역주3) 마지막으로,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에서는 작곡가의 메트로놈 지시를 어째서 진지하게 지켜야만 할까?(역주4) 말러는 전통 안에 가치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전통은 타락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화 복원가들처럼 우리 연주자들도 베토벤의 작품들을 최초의 생생한 모습으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층층이 쌓여 있는 관습을 벗겨 내어 먼지와 때를 제거해야만 할 것이다.
  
산악인은 모든 힘을 다 해 정상에 올라갔을 때 기쁨에 넘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음악가들은 결코 정상에 도달하지 못 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지평선은 더 멀어진다. 그러한 순간은 우리에게 고마운 것인데,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은 풍족해질 것이다.
  

- 번역 : 尙憲 -

   
   
[역주]
  
[1] <비창> 소나타의 첫 악장은 ‘그라베(Grave)’로 시작하여 ‘알레그로(Allegro)’로 이어지는데, 헨레 에디션을 비롯하여 여러 악보에는 알레그로 파트만 반복하도록 도돌이표가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가령 루돌프 제르킨은 그라베 파트까지 통째로 반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이렇게 하면 이 악장의 형식이 ‘AB-AB-ACB-코다’(A:그라베, B:알레그로, C: 발전부)와 같이 되며 이러한 구조는 후기 사중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안타깝게도 베토벤의 자필 악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어서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최근에는 언드라시 시프를 비롯하여 몇몇 연주자들이 이 해법을 따르고 있다.
  
[2] 소나타 제14번의 첫 악장에는 시작 부분에 ‘senza sordino(댐 퍼 없이)’라는 지시어가 두 번이나 나온다. 이것은 현대적 용어로 풀어서 말하면 ‘오른쪽 페달을 밟고’ 연주하라는 뜻인데, 여기서 베토벤이 의도했던 것은 이 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페달을 바꾸지 않고 계속 댐퍼를 올려 둔 채로 연주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베토벤은 서로 다른 화음들이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몽환적인’ 음향 효과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베토벤 당대의 피아노로 연주할 때에는 좀 더 만족스럽겠지만(물론 이조차도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피아노로 연주할 때에 이러한 페달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드라시 시프는 페달을 1/3 정도만 밟고 베토벤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
  
[3] 언드라시 시프는 렉처를 통해 첫 악장의 박자가 12/8 박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작 부분에서 주제를 연주할 때 리듬이 좀 더 날카로워야 한다고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때 그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4]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의 제1악장에서 베토벤은 메트로놈 빠르기를 ‘2분음표=138’로 요구했는데, 이것은 극단적으로 너무나도 빠른 것이어서 그대로 따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개는 이를 무시하고 훨씬 더 느린 템포로 연주하는 일이 많지만, 언드라시 시프는 베토벤의 템포 지시에 최대한 가깝게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제3악장에서도 베토벤은 ‘8분음표=92’의 템포를 요구했지만 대개는 훨씬 더 느리고 무겁게 연주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시프는 음악이 멈추지 않고 흘러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지나치게 느린 템포에 반대했다.
   

 
   이 글은 [CODA] 2008년 11월호에 커버스토리로 실렸던 글입니다. 번역 작업을 맡겨 주셨던
   김효진 편집장님께 특별히 감사 드립니다. 다만, 언드라시 시프(András Schiff)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게 아니라 미샤 도나트(Misha Donat)가 영어로 옮긴 것을 토대로 하여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임을 밝혀 두겠습니다.


    






About this entry


“ 슈만 그리고 플레트네프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건반위의 짜르'라는 멋진 별명도 갖고 있는 미하일 플레트네프.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범상치 않은 외모와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다. 지난 내한공연에서 보여준 말 한마디 없는 차가운 무표정과 경지에 다다른 기교와 연주는 듣는 이를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일체의 허식과 잡념없는 순음악적 감동이라고 할까. 무대로 걸아나와 앉자마자 연주에 몰입하고 끝나고 나서는 다시 걸어나가고 앙콜연주가 끝나자 역시 말없이 손으로 엑스자를 그으며 더이상의 앙콜은 없다고 무대를 떠나는 말없는 짜르.

플레트네프는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고 78년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자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신동 소리를 듣는 다른여타 음악가들과 별 반 차이가 없지만 그 후 활동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러시아 연방이 붕괴되고 난 후 직접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였고, 지휘자 활동을 겸하게 된다. 이때부터 피아니스트로서의 역할보다는 지휘자의 역할에 더 중점을 두고 활동하여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이 약간은 위축되게 된다. 하지만 지휘자로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었는데 그 대표적인 음반이 얼음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이라는 화려한 찬사를 들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음반이다. 버진에서 발매된 이 음반은 대단한 찬사와 함께 플레트네프가 DG에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게 된 계기가 된다.

이후 더 나이 늙기 전에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싶다는 플레트네프의 바람과 함께 러시아 내셔럴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에서 객원 지휘자로 물러난다. 피아니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하면서 절정에 다다른 음악가의 역작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사이에 DG에서 발매된 음반들 또한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피아니스트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카네기홀 실황음반을 시작으로 초창기의 강인하고 직선적인 음악 어법에서 벗어나 유유하면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한다.


DG에서 발매된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음반에서 이미 그의 음악적 방향이 예고 되었지만, 본격적인 귀환을 알린 이후 쏟아진 신보에서는 보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그의 음악적 방향이 모색되었다.


곡을 해체해서 재조합하는 듯한 그의 과감한 음악적 실험이 많은 평론가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지만, 그를 추종하는 많은 매니아 또한 동시에 양산하였다.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정공법으로 음악을 해석하던 멜로디아나 버진 시기와는 달리 DG 시기에는 과도기적 과정을 거쳐서 C.P.E BACH나 슈만 음반들을 통해 파격이라 불리는 음악적 해석을 보여주게 된다.


플레트네프가 음악의 절대적 정신이라고 표현하며 존경한 미켈란젤리나 호로비츠처럼 그도 그만의 철옹성과 같은 음악세계를 완성해가는 중이다. 성장하는 어린 아이와 같이 그의 음악 세계는 꾸준히 성장하여 왔다. 데뷔 무렵부터 이미 정상급의 연주자였지만 그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그의 음악 세계는 플레트네프라는 이 이름에 무한한 신뢰감을 안겨주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시기의 플레트네프 음악은 강공법을 선택, 음악에 대한 직선적인 해석과 강인한 기교 빈틈없는 음악을 보여주었다. 촘촘히 짜여진 옷감처럼 단단하면서도 애매모호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피아노 터치와, 러시아 정통 피아니스트를 계보를 잇는 피아니스트 답게 경지에 다다른 피아노 기교를 보여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휘자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알린 차이코푸스키의 '비창' 음반이다. 이 음반의 대성공과 더불어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양 지위에서 굳건한 위치를 자리잡게 된다. 같이 커플링된 차이코푸스키 사계는 동곡 최고의 명반 반열에 올랐으며, 이 시기 그가 녹음한 모든 피아노 음반들은 평단과 청중 사이에서 열렬한 환호와 갈채를 받는다.






지휘자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발매된 음반들. 이 시기의 음악은 지금 생각하면 과도적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부드러워지면서도 완숙해진 음악적 해석으로 이미 최정상급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되었던 음반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아니스트로의 귀환을 알린 음반. 더 늙기 전에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과 함께 당시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음반으로 기억된다. 실황음반이지만 수록된 모든 곡이 엄청난 중량감을 자랑하는 곡들로 채워져 있으며, 당일 연주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지칠줄 모르는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바흐-부조니 '샤콘느'라는 이 장대한 곡의 시작은 이 날 연주회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 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과 쇼팽의 스케르초 전곡 연주를 거쳐 마지막 앵콜 연주에서는 발라키에프의 악명이 높은 이라슬메이로 이 날 연주회의 대미를 장식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르헤리치와 타계한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한 음반. 아르헤리치와 함께한 프로코피에프 음반은 레파토리의 희귀함은 물론이지만 최정상급 연주자의 만남이라는 의미외에도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아우라는 풍기는 음반이다. 이 음반에서 플레트네프는 아르헤리치에게 적극 호응하면서도 뒷받침 하는 연주를 한다. 성향이 전혀 다른 두 연주자의 만남이지만 결과는 듣는 이로 하여금 최고의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지금은 타계한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한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말이 필요 없는 클래식의 대표적인 곡들이지만 이 날 로스트로포비치와 플레트네프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에프는 기존의 명반들과는 전혀 괘가 다른 아주 독창적이며 파격적인 실험을 겸하고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음반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음반을 대단히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창조와 파괴라는 이름에 걸맞는 슈만의 음반. 곡을 해체하는 것 같지만 어느새 재조합해 새로운 슈만상을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음반이다. 플레트네프의 새로운 음악세계 정점을 알리는 음반이라 생각한다.


이 외에도 멜로디아 시절 녹음한 차이코푸스키의 피아노 소품집도 유명하다. 멜랑콜링에만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과 과장된 템포 조절없이 정석적인 해석만으로 차이코푸스키의 우울과 아름다움을 표현해 낸 음반이다. 이런 절묘한 균형감각은 이후 플레트네프가 발표한 모든 음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기이도 하다.



About this entry


“ 모라베츠의 쇼팽 녹턴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 이반 모라베츠이라는 이름의 피아니스트가 있다. 서양 고전음악계에서는 비교적 변방인 체코 출신의 숨겨진 피아니스트이다. 지명도는 낮지만 실력은 지명도와는 반비례로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중의 한명이다. 그는 50년대부터 세인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자신만의 음악적 경력을 쌓아왔으며 흙 속의 진주와 같은 음악을 음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는 위대한 마에스트로 미켈란젤리의 제자였고, 스승처럼 수정처럼 빛나고 절제된 톤으로 그만의 리리시즘을 완성하여왔다.


악독 레이블인 워너에서 몇 년전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울티마 시리즈로 그의 가장 빛나는 명반중의 명반인 쇼팽녹턴이 수입되기 전까지 나는 그가 누구인지조자 몰랐었다. 그가 연주한 쇼팽 녹턴을 구입하기 전까지 이 이름도 없는 피아니스트의 음반을 사야되나 말아야 되나 참 많이도 망설였던 것 같다.


우여곡절끝에 구입한 음반을 손에 쥐고 시디플레이어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그간의 모든 나의 의구심과 불안감은 첫곡 Nocturne op.9-1 과 함께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의 연주는 불신으로 가득한 언 땅과 같은 내 마음을 녹이는 봄바람 같은 연주였다. 그는 봄을 부르는 봄바람과 같은 연주자였다. 쇼팽 녹턴에 대한 겨울과 같이 완고한 나의 교만과 권태는 사라졌다.


모라베츠의 음색은 잘 정제되어있고 투명하다 때문에 여러면에서 미켈란젤리와 유사하지만
모라베츠의 음악에는 쇼팽이 가졌음직할 병적인 섬세함이 있다. 녹턴 연주에서도 모라베츠는 악보에만 구애받지 않고 숨겨진 쇼팽의 정서를 읽어내고있다.


예측이 불가능한 자유로운 루바토, 셈세하게 빛나는 아티큘레이션 그리고 그만이 가지고 있는 소노리티. 모라베츠의 연주는 프랑소와의 병적인 환상, 루빈스타인의 절제된 미덕과도 그 괘가 다른 연주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프랑소와 연주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안개 자욱한 여름 밤이 프랑소와의 연주라면 모라베츠의 연주는 투명한 한여름 밤을 보여준다. 덥지않은 여름 밤 맑은 밤공기를 타고 은은한 달빛이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 모라베츠의 연주는 몽환적인 한 여름 밤에 남극의 투명한 겨울바다를 연상시킨다.


녹턴과 같이 잘 알려져있고 많은 연주자들이 도전한 곡을 매너리즘에 젖지 않고 연주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나만해도 수많은 녹턴 연주를 갖고 있고 들어보았지만 마음이 가는 연주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이다. 악보의 음표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연주는 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쉬운만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주하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지는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라베츠의 연주는 프랑소와처럼 개성적이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연주보다 아름다웠다. 섬세하다 못해 만지면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그의 지극히 투명한 음색은 다시 살아난 미켈란젤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모라베츠의 연주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의 본질을 나에게 일깨워주었다는 것이다
.
베토벤이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지켜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 것처럼 모라베츠는 음악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나에게 각인시켜주었다.




 



About this entry




Categories

분류 전체보기 (56)
미켈란젤리_삶... (6)
미켈란젤리_음 악 (7)
미켈란젤리_음 반 (3)
미켈란젤리_사 진 (2)
미켈란젤리_관련 정보 (3)
미켈란젤리_음악 듣기 (3)
고전음악관련 (21)
고전음악소식 (6)
Cafe Antique... (2)

Recent Trackbacks

Rec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