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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투로 베네디티 미켈란젤리-2. 그가 남긴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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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리의 음악-무결점의 피아노

미켈란젤리의 연주를 들으며 내기를 한다. 과연 그의 연주에서 몇 개의 미스터치가 나오는지. 하지만 그의 연주를 듣고 나면 그저 맥이 풀리게 된다. 단 하나의 미스터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켈란젤리의 연주는 완벽, 무결점, 100% 순수함, 그 자체였다. 이는 그의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었다.

미켈란젤리의 연주의 특징은 대단히 깨끗하고 영롱한, 그와 동시에 신비스러움을 갖춘 음색에 있다. 때론 강렬하지만 때론 극도로 섬세한 그의 연주는 대단히 아름답다. 이는 그가 피아노의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한 대의 피아노를 죄다 분해한 다음 다시 완벽하게 조립할 줄 아는 흔치 않은 능력을 갖춘 피아니스트였다.



세르쥬 첼리비다케가 이야기하는 미켈란젤리. 첼리비다케는 대표적인 독설가였지만 미켈란젤리에 대해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첼리비다케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을 연주하고 있는 미켈란젤리. 두 사람 모두 다재다능한 천재였으며 알아주는 딸깍발이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들은 서로를 무척 존경했다.


미켈란젤리는 자신의 대단한 명성에 비해 적은 양의 레코딩만을 남겼고 그 레코딩의 상당수는 연주실황 녹음이었다. 그는 레코딩을 좋아하지 않았고 한창 활동할 때 가졌던 공백기간 또한 길었기 때문이다. 레코딩 수가 적기 때문에 그의 연주 레퍼토리가 협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결코 아니다.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드뷔시, 라벨 등등 전 시대를 걸쳐 다양한 작곡가의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결코 많은 양의 음반은 아니지만 이처럼 폭넓은 작곡가의 곡을 레코딩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가 남긴 많지 않은 음반들은 하나같이 완벽함, 무결점을 99.9%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남긴 음반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해석을 보여주는 명반들로 평가 받고 있다.


미켈란젤리의 명연, 명음반

우선 그가 무척 사랑했던 레퍼토리 중의 하나인 베토벤, 그 중에서도 협주곡 5번 ‘황제’를 살펴본다. 미켈란젤리는 ‘황제’에 많은 애착을 갖고 여러 번에 걸친 녹음을 했는데 동시대를 살았던 그 어떤 연주자에 비해서도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시모 프레시아와 협연한 60년대 음반과 첼리비다케와 함께 한 75년 음반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음반은 79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빈 심포니와 함께 한 79년 음반이다.




‘황제’ 한 곡만이 수록된 음반이라 돈 아깝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돈이 아깝지 않다. 미켈란젤리의 영롱하고 빠른 터치는 압권이고 줄리니의 유연한 반주가 잘 어우러져있다.

이 음반에서 들려주는 미켈란젤리와 줄리니의 ‘황제’는 기존의 음반에 비해 상당히 다른 차원의 해석을 들려주고 있는데 강인하고 경쾌함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유려하면서도 깨끗한 음색의 ‘황제’를 들려주고 있다.

미켈란젤리의 쇼팽도 유명하지만 미켈란젤리 특유의 섬세함, 완벽함, 순도 100%를 여실히 들려주는 연주라면 뭐니뭐니해도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의 곡들이 꼽힌다. 특히 그가 남긴 드뷔시의 전주곡, 영상 1&2(image 1&2)이 수록된 음반은 이 곡이 표현하고자 하는 신비스러운 색채를 한 대의 피아노로 가장 잘 표현한 명반 중의 명반으로 단연 손꼽힌다.



드뷔시의 영상(Image) 중 물의 반영(Reflets dans l'eau)

라벨의 그 어렵다는 피아노 곡인 ‘밤의 가스파르’를 가장 잘 연주했던 인물도 바로 미켈란젤리였다. 4종류의 꽤 많은 녹음이 있다. 그 중 어떤 것을 택해도 완벽함, 그 자체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겠으나 음질면으로 봤을 땐 1959년에 남긴 스튜디오 음반이 가장 낫다고 볼 수 있겠다.



'밤의 가스파르'의 수많은 음반 중 만장일치의 극찬을 받는 미켈란젤리의 음반이다.


'밤의 가스파르' 뿐만 아니라 라벨의 피아노 곡 중 또 하나의 중요한 곡인 피아노 협주곡에 있어서도 미켈란젤리의 음반은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 특히 2악장에서 표현하는 이 곡 트유의 아름다움은 미켈란젤리를 따라갈 자가 없다는 평이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이 함께 수록된 음반. 결정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명반이다.



미켈란젤리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면 대단히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게 근엄하고, 그렇게 차갑게만 보이기만 하는 그의 얼굴. 하지만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그 영롱하고 깨끗한 터치와 음색에 놀라고 또 놀라게 된다. 어찌하여 저런 무서운 표정의 얼굴에서 이처럼 순수하기만 한 연주가 나올 수 있는 걸까. 이는 이렇게 바꿔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겉모습은 그토록 차갑게만 느껴졌고 평소에 잘 웃지도 않는 매마른 감정의 소유자처럼 보였지만 그의 내면엔 세상 그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었다고. 그 뜨거운 심장은 음악을 통해서, 조국을 향한 애국심을 통해서, 그리고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는 교육열을 통해서 한없이 발산되었다고. 20세기를 살다간 대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글쓴이 :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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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우리츠 라벨 ”


요즘 음악을 거의 안듣기는 하지만, 가끔 듣는 유일한 음악이 라벨의 관현악 작품들이다. 아바도 & 런던 심포니 연주의 트리오 시리즈를 듣는다. 가격도 저렴하고 아바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찾기 쉽기 때문에 부담없이 손이 가는 것 같다.

라 벨은 불행이나 슬픔 절망과는 거리가 먼 작곡가이다. 삶 자체도 평탄했고, 어려서부터 크게 천재로 각광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 실력있는 학생으로 작곡가로 꾸준히 성장하여 후일 대성하였다. 교통사고만 아니였어도 만년까지 유쾌한 삶을 지속하였을텐데, 만년의 교통사고는 작곡가의 팔,다리를 잘라놓은 셈이다.

라벨의 전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라벨은 독신이지만 어린이를 사랑하고 그 삶까지 참 유쾌한 사람이다. 오죽하면 스스로가 슬픔과 절망은 작곡의 적이라고까지 말했으니까? 고난속에서 만개한 베토벤과 슈베르트같은 독일 정신에 입각한 작곡가들과는 궤가 많이 다르다. 그리고 라벨의 음악은 그가 좋아한 시계처럼 조밀조밀하고 꽉꽉 짜여진 음악이다. 라벨이 다작을 하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그의 완벽주의적 기질, 시계를 좋아한 그의 성격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라벨의 사진을 보면 멋쟁이 옷차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그의 회중시계이다.

독신이지만 깔끔했고, 독신이라고 다 동성애자는 아닌 법, 어린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어린이를 위한 음악도 꽤나 많들어 내놓았다. 게으른 작곡가 라벨이 얼마나 아이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면모이다.

동 시대 최고의 작곡가로 추앙받는 드뷔시에게 은근한 질투심도 갖고 있었지만, 라벨은 리히테르가 좋아할만한 성격이 소유자같다. 유쾌하고 따뜻하고 물론 까다로움은 모든 작곡가들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으니 빼고, 키는 작지만 잘 차려입은 멋쟁이에 홀딱 뒤로 넘긴 머리는 조금은 근사하기까지 하다.

라벨은 작곡도 별로 안했다. 그나마 편곡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라벨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오늘 날에도 즐겨 연주된다. 편곡작품까지도 인기는 상종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도 라벨 편곡반이 가장 인기있으니까...

라벨은 음악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재미있고 유쾌한 작곡가이다. 말러에서 느껴지는 비극으로 치닿는 비애감같은 것은 그의 음악에서 찾을 수 없다. 비극이 수많은 영감의 원천으로 등장할 때 라벨은 단호하게 희극을 꺼내들었다.

라벨의 음악은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시계속 톱니바뀌처럼 째깍째깍 이를 맞물리며 돌아간다. 그의 음악은 빈틈이 없다. 이것이 라벨의 음악성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시계하면 라벨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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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벨 : 피아노 협주곡 (EMI, 1957년 녹음) ”

사용자 삽입 이미지
Ravel : Piano Conerto In G

라벨 : 피아노 협주곡 (EMI, 7243 5 67258 2 9 : 1957년 녹음)

라벨의 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을 논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미켈란젤리의 유명한 음반이다. 미켈란젤리가 EMI에 남긴 음반중 슈만의 카니발과 더불어 가장빛나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을 녹음 할 당시 미켈란젤리의 나이가 불혹을 앞둔 나이이지만 건반에 대한 통제력이나 음악적 성숙함은 이미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녹음이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피아노로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같다는 표현으로 미켈란젤리의 해석을 표현하였다. 이 표현처럼 적절하게 이 협주곡의 2악장을 묘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완벽한 기교도 중요하지만 기교를 넘어서는 것은 어떻게 연주되느냐라는 것을 느끼게된다. 미켈란젤리는 완벽한 기교 아래 이곡을 정복해 나가지만 기교를 넘어서 존재하는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어느 누가 이처럼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이곡을 연주해 나갈 수 있을까...


미켈란젤리는 마치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하여 나즈막히 노래하는 것 같다. 지극히 섬세하면서도 그 흐름이 자연스러워 어색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루바토. 얼름처럼 순수하게 절제된 피아노 소리.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처럼 맑고 순수한 피아노 소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물론 이 음반에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59년이라는 녹음연도와 스테레오 초기녹음이라는 한계, 잘 알려지지 않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분명 이 음반의 한계를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짐머만과 블레즈가 80년대 녹음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과 비교하여보면 모든 것이 더욱 열등해 보인다. 짐머만의 녹음에 비해 부자연스런 피아노 소리, 답답한 음향, 부족한 오케스트라의 뒷받침은 더욱 드러난다. 무엇하나 짐머만의 세련된 음반에 비해 나은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점을 덮고도 남는 아우라가 미켈란젤리의 녹음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미켈란젤리의 불세출의 연주과 해석이다. 현재 녹음에 비해 비교적 열악한 음질이나 빈약한 오케스트라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음반은 한 예술가의 위대한 숨겸을 담고 있는 것이다. 웬만큼 피아노를 칠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곡의 2악장을연주할 수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미켈란젤리처럼 2악장을 연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것이 이 음반의 수많은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50여년 동안 많은 사람들사이에서 최고의 음반으로 회자되는 까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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